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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0일 일기

10. 할머니

지난 10월 20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오후 3시쯤이었나? 막내 고모한테 먼저 전화가 왔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신장에 문제가 생겨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였다.
고모는 할머니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안 좋아져 응급실으로 옮겼고, 혹시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회사를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개천가를 걸었다. 마음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고, 어쨌든 연차를 내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단 며칠만이라도 곁을 지켜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양산 삼촌에게 전화가 왔고, 할머니가 위급한 상황이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갈 때까지는 어떻게든 붙잡아보겠다고도 말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진정이 되지 않았고 회사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자리로 돌아오고 몇분이 지나지 않아서 고모로부터 할머니 임종 소식을 들었다.
팀장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팀장은 입사자 면접을 보느라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일단 짐을 쌌다. 쨌든 당장이라도 가야했다.
팀장이 자리로 돌아왔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아서 말문이 막혔다. 굉장히 쇼크를 받은 상태였던 거 같다. 결국 차장님이 대신 말을 해줬고 눈물이 툭 터졌다. 회사에선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고, 가는 길에 택시에서 기차표를 잡았다. 그냥 계속 눈물이 났다.
하메에게는 내려가는 기차에서 연락을 해야지 싶었는데 걔가 집에 있었다. 마침 하메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짐은 싸야하는데 또 뭐라 걔한테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고 고민스러웠다. 짐을 싸는 걸 보고 하메가 어딜 가냐고 물었고, 결국 모든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기차, 또 기차역에서 다시 장례식장까지 계속 울었다. 너무 울었더니 막상 또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이 많이 나지 않았다. 가족들도 옆에 있었고, 아무래도 최근의 몇년 동안에는 할머니와 떨어져서 살았더니 그런가 싶기도 했다.
장례식의 과정들은 너무 길고 고됐다.
화요일 밤부터 3일간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하고, 선산에 가서 할머니를 안치시키고, 집을 정리하고, 삼오제를 치르고, 49제 첫제를 지내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내 집도 아닌 공간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낸다는 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바닥은 너무 딱딱하고 베개는 너무 높았다.
본가는 내가 빠져나오면서 할머니와 오빠만 지냈는데, 심지어는 난 이사 후에 1년 남짓 살았으므로 그 집이 정말 내 집 같지가 않았다. 장례식장+본가에서 내 공간 없이 몇박을 있는다는 게 정말 괴로웠다... 집에 돌아오니 내 컨디션에 맞춰진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 있다는 게 얼마나 포근하고 감동적이던지...

후회되는 건 있다.
올해는 코로나의 영향 때문에 추석 때 내려가지 않겠다 공표를 한 상태였다.(그리고 난 음식을 하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여름에 내려갔을 때(그때도 할머니가 휴가는 언제냐, 한번 내려와라, 줄게 있다라고 말해서 간 것이었다) 할머니 생신(추석 일주일 뒤)에 간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막상 그때가 되니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였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전화만 한통 드리고 말았다. 심지어 그때는 목소리가 말도 안되게 좋아서, 나는 연말에나 한번 얼굴을 비추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안 가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 알았더라면 그때 내려갈걸... 너무너무 후회된다.
그리고 집 정리를 할때 내가 할머니한테 보낸 편지가 세통이 나왔는데, 너무너무 못된 말을 써놔서 깜짝 놀랐다. 감사하다든지 사랑한다든지 그런 말이나 할 것이지... 어른들이 왜 있을때 잘하라고 하는지 알 거 같기도 하고...ㅋㅋㅋㅋㅋ 충격 받았다. 아무리 치기 어릴 때라지만... 좀 더 우리 사이가 다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가도 문득문득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

아 그리고 에피소드가 있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며칠 전에 피지낭종 수술을 또(!) 받았는데, 원래는 그 주 주말에 실밥을 풀 예정이었다. 나는 또 켈로이드로 번질까 싶어 철저히 금주를 하고 있었고... 덕분에 아빠 장례식 때와는 완전 다르게 술을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굉장히 또렷한 정신에 보내드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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